최근에 광복절을 전후해서 기업들이 잇따라 투자나 채용 대책을 발표했다.

 

딱 보면 숫자들이 어마어마하다. 어떤 기업은 10조를 투자하겠다고 하고 어떤 기업은 46조를 투자하겠다고 하고, 어떤 기업은 3만명을 추가 고용하겠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정부는 어김없이 세제 혜택을 줬다. 여러가지 규제를 없애줬다고 하면서 자기 성과를 자랑하고 있다.

 

그래서 숫자만 보면 기업들이 엄청 공격적으로 투자를 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이고, 경제가 막 살아나고 있는 것 같은데··· 자세히 뜯어보면 이 숫자들이 내실이 없다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어서 그 숫자들의 실체에 대해 조사해보았다.

 

 


투자하고 채용해서 돈 버는 것이 기업의 일인데, 요즘들어 그룹별로 얼마 채용한다, 몇만명 채용한다, 얼마 투자한다. 갑자기 발표를 몰아서 하는데 왜 그런가?


 

올해는 광복 70주년이 빅 이벤트였고, 마침 정부는 청년 고용절벽을 해소하겠다고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필연인지 이에 맞춘 기업들의 채용 발표와 투자계획 발표가 일치하긴 했다.


 

발표된 투자 및 채용 계획은?


 

LG디스플레이 : 2018년까지 10조원을 투자하겠다.
SK하이닉스 : 앞으로 10년동안 신규 공장에만 46조원을 투자하겠다.

 

삼성그룹 : 앞으로 2년간 3만명의 청년에게 추가 일자리를 제공하겠다.
롯데그룹 : 3년간 2만 4천명을 고용하겠다.
한화그룹 : 2년 내에 1만 7천명을 추가 고용 하겠다.

 

이 세 그룹이 발표한 채용내용이 기존의 채용을 제외하고 추가로 채용하는 규모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발표가 나올 때마다 정부는 우리가 이러한 세제 혜택을 줬다. 이러한 규제를 철폐했다. 이런 스스로의 성과에 대한 홍보도 했다. 보도자료 같은 것들을 보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대기업들이 투자나 채용을 결심하게 됐다는 문구들이 포함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런 발표들이 실제로는 안그렇다는 것인지, 어떻게 봐야하나?


 

워낙 숫자가 10조, 46조 이러면 감이 안오는 숫자라 사람들은 '오 많이 하나보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 따지고 보면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거나 내실이 없는 경우가 많다.


LG디스플레이가 발표한 2018년까지 10조 투자 계획을 보면,


3년간 10조니까 1년에 약 3조 넘게 투자하는 격인데 이 회사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이 회사가 지난 3년간 투자한 돈이 11조 쯤 된다. (원래 디스플레이가 장비 계속 갈고 투자해야하는 업종) 결국 앞으로 3년간 투자할 돈이 지난 3년간 투자한 돈보다도 더 적을 거라는 이야기가 된다. 게다가 지난 3년 동안에 LG디스플레이는 이렇다할 신공장 증설은 없었다. 거의 유지보수 정도와 약간의 증설 정도만 있었다. 2007년에 이 회사가 파주에 처음으로 공장을 지을 때는 한 해에만 7조를 투자한 적도 있었다. 근데 앞으로 3년간 10조를 투자한다고 했으니 그냥 하던대로 하겠다는 뜻이다. (사실상 유지비?)

 

SK하이닉스의 경우는 약간 반대의 사례인데, 10년간 신규공장을 짓는데에만 46조원을 쓰겠다고 했다.

 

기존 유지보수 투자를 빼고 신규로만 46조원 투자. 즉, 매년 장비 업그레이드 및 유지보수 등 이런 비용을 제외하고 새 공장을 짓는데만 투자하는 비용이다. 그렇다면 기존 유지보수 투자에 신규투자를 합하면 앞으로 10년간 70조에서 80조원 정도를 투자해야 된다는 말이다. (LG디스플레이의 기준으로 발표했다면 70조라고 발표했어도 될 규모) 1년에 7-8조원 정도를 투자해야되는 셈인데, 살펴보면 왜 합해서 70조라고 발표하지 않았는지 생각이 든다.

 

이 회사가 지난해에 5조원 정도 투자를 했고, 올해 한 6조원 정도 투자를 했다.

지난해와 올해가 이 회사의 실적이 사상 최대였다. (지난 해에 사상 최대였고 올해 사상 최대를 경신할 것으로 예상) 그만큼 시장 상황이 좋았다. 이 회사가 메모리 반도체를 만드는데 지난 몇 년 동안 스마트폰 시장이 급속하게 커짐에 따라 메모리 반도체 시장도 덩달아 커진 것이다. SK하이닉스는 세계 2위 메모리 반도체 업체이기 때문에 그 수혜를 톡톡히 봤다.

 

그런데 앞으로도 과연 그럴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지금 스마트폰 시장은 정체되거나 줄어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 미국의 인텔이나 중국의 비오이 라던지 거대한 업체들이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과연 지금과 같은 실적을 유지할 수 있는가하는 궁금증이 나오는데 투자는 지금보다도 더 하게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46조원 앞으로 못쓸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지?


 

SK의 경우는 사업 외적인 이슈도 있기는 했다.

최태원 회장께서 광복절 특사로 사면이 되는가 안되는가를 놓고 한참 말이 많았고, 최 회장이 나오기만하면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SK측에서 많이 했다. 우리가 정말 투자할 게 많은데 회장이 안계시니 투자를 못한다는 이유로 회장의 가석방을 계속 요구해왔다. 그런데 이제 회장이 나오셨는데, 예년에 하던만큼 투자하겠다고 하면 모양이 안맞는 것. 그러니 회장께서 과감하게 대통령을 모시고 공장에 가서 투자 계획을 발표했는데, 시장에서는 이것이 과연 현실성 있는 숫자인가하는 의문이 있다. 최 회장님의 석방을 축하하기 위한 일종의 만들어낸 숫자가 아니냐.

 

혹은 만약에 진짜 이렇게 투자를 한다면 오히려 회사가 위험해지는거 아니냐, 너무 무리하게 투자를 하게되는 것 아니냐 하는 우려가 있다. 물론 SK하이닉스가 어려운 시장 환경에도 지금보다 더 연구개발을 잘해서 더 이익을 늘리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일반적인 분석으로 봤을 때 지금과 같은 투자계획은 오버가 아닌가 이런 우려들이 나온다.

 

 

왜 이런일이 벌어질까?


 

두 가지... 정부도 기업도 아쉬웠던 것.


정부는 광복 70주년이라는 이벤트가 있었고, 집권 3년차를 넘어가는 와중에 뭔가 성과를 발표하고 싶고, 경제 살리기가 지금의 이슈니까 당장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이 대기업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 이런저런 대책을 발표한 기업들을 보면 다 아쉬운 점이 있었다.

SK는 최태원 회장의 가석방 문제가 있었고, 롯데그룹은 최근 왕좌의 난으로 분란을 일으켰고, 삼성은 메르스 사태에 대해 삼성병원의 부실대응이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의 과정에서 생긴 불협화음 등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다.

 

또 정치권에서는 다음 달 말에 있을 국감에 오너들을 대거 부르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그런 것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원활한 관계를 맺어놔야하니 미리미리 적극 협조한 것이 아니겠는가 싶다.

 

사실 지금 경제 상황이 안좋은데 그룹의 엘리트들이 이 난국을 타계하기 위한 전략을 짜고 있어야 하는데 태극기를 어떻게 붙일지, 불꽃놀이를 얼마나 화려하게 할지, 3만명이라는 숫자를 어떻게 만들지 이런걸 고민하고 있으니까 이게 정말 정부가 도와주기는 커녕 기업들의 힘을 빼는 것 아닌가 그런 아쉬운 생각이 든다.


 

 

2015년 8월 30일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

 

 

 

Posted by 사실은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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